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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13. 05:54

심 보리스 천국영생

2010 7 11
결국

보랴 아저씨는 돌아가셨다.

 

오늘은 블라드의 생일.

 

삶은 이렇게 돌고 돈다.

 

아저씨의 영정 사진에 검은 리본을 두르면서

말쑥한 아저씨의 얼굴은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살아 남아야 하는 가족들은

당장 오늘이 지나면 쓸모 없어질 여름 농작물을 수확하고

일을 하기 위해 밥을 먹고

가슴을 치며 눈물을 훔친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보랴인 손자는

오늘도 여전히 장난꾸러기라

웃통을 벗어 젖히고 맨발로 놀러 나간다.

제 할아버지를 쏙 닮아 씩 환하게 웃으면서.

 

술에 만취한 아저씨가 차도를 향해 휘비적 휘비적 걸었고

옆집 계집애는 빵을 사러 자전거를 타고 쌩 달려간다.

알료나가 김치 담글 배추를 한 차나 실어 보낸다.

 

나는

보랴 아저씨 영정사진에 검은 리본을 둘렀다.

나는

블라드의 생일 카드 챙겼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 가족들이 슬픔에 눈물 짓고 있다고 해도

태어난 것을 축복 받아야 할 사람은 축하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명도 죽음도 하나님이 하시는 반죽안에 있는 것이라서...

 

그리고 오늘

 

Part 1.

 

냉동실이 없어서 시체가 방치되고 있으니 찾아가라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영안실로 향했다.

 

모두가 휴가 갔다고 영안실 문도 안 열어 주는 시츄에이션

 

멀뚱멀뚱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전도사 사샤에게 어떻게 된 사정인지 알아오라니까

다들 휴가 갔으니 내일 오라는 사람들 틈에서

돈 주면 일단 문을 열어주겠다는

뚱한 표정의 의사 한 명을 데려왔다.

 

내일 아침 담당자들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씻기고 옷 입혀서 보내준다는데도

영정에는 시신이 꼭 있어야 한다면서

나타샤 아줌마의 친구들이 난리를 치고

나타샤 아줌마 아들 슬라와가 난리를 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직은 이 땅에 시신과 함께 있다고 믿는

이곳의 문화 때문에

의사도 간호사도 돈줘도 싫다고 안 오고

가족들은 기어이 이 더운 날 집에다 모셔놔야 한다고 한다.

 

아무도 없으면 자기들이 씻기고 옷 입힌다던

나타샤 아줌마의 친구들과 나타샤 아줌마의 아들은

정작

영안실 문 근처에도 못간다.

 

할 수 없이 슬라와 전도사님이 들어가 포르말린 주사 놓는 것을 도왔다.

돈에 눈이 멀어 오신 간호사 언니들은

이런;; 시체 처리 방법을 모르신다.

할 수 없이 아빠가 시신에서 나오는 피를 닦아내고

급한대로 콧구멍과 입을 막으신다.

 

육신.

영이 떠난 육신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자는 듯 떠난 아저씨는 지금쯤 천국에서 행복할 텐데..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은

그렇게 본질이 떠난 껍데기들인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art 2.

 

집에 와서

관을 집안에 들인다.

발랄하던 개들이 당최 짖지를 않는다.

보랴 아저씨가 키우던 개들이라 아저씨가 없으니 시무룩해졌다

보식은 아저씨를 찾아 교회까지 왔다가 갔다.

지금은 어디서 아저씨를 찾아 헤메고 있을까

 

영정 사진을 두고

아저씨의 시신을 본 아저씨의 손자들이 나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수염이 없다고 얼굴 색도 다르고 이상하다고

수염이 없는 보랴 아저씨는 손자들에게도 낯설다.

 

몰아치듯 진행되는 이 과정들 속에서

내일 장례식이 끝나기 전까지 모두에게

수염 없는 보랴 아저씨만큼 이 상황이 낯설겠지만

누군가를 기억하며 아쉬워하며 보내려는 일종의 행위가

행위 자체로 의미를 가지면서 본질이 뒷전으로 밀린다.

이 낯선 상황 조차 낯설게 느껴지기도 전에.

 

Part 3.

 

내일 매장 할 때 관을 덮을 천에 이름을 써야 한단다

한글로 써달라고 한다.

 

붉은 천에 하얀 치약으로

모기에 뜯겨가며 이름을 적어내려 갔다.

 

심 보리스 천국영생


여덟자를 쓰는데 두시간이 걸린다

목도 뻐근하고 팔도 저리고 허리도 아프다

모기가 문 자리가 근질근질하다.

(치약으로 쓰다니;;;; 난생 처음으로 치약으로 글씨를 써봤다)

이게 뭐 하자는 플레인가 생각 하다가

황급히 생각을 접었다.

 

남의 땅에 감히 이방인으로 태어나

눈으로도 한 번 본적 없는 뿌리를 기억하고

어찌어찌 비슷한 음식을 지켜가며

애써 되뇌이지 않으면 사라지는 언어를 부여잡고

죽을 때도 고려인으로 죽어야 한다는 고집.

 

고려 이름도 아닌 이름을 고려말로 써달라는

써진 이름의 위 아래도 구분 할 수 없는

 무리의 현실.

이들은 한국인도 아니고 현지인도 아니고

고려인이 되어버린 무리.

 

그들의 고집 앞에 겸허해졌다.

 

그리고 그들만큼 이 땅의 나그네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인생.

그 정처 없음 앞에 겸허해졌다.

 

p.s.

영정 사진에 검은 리본을 두르고

빈소를 차리고

시신위에 놓을 꽃을 다듬고

관을 덮을 천에 이름을 쓰고

관속에 흐트러진 흰 천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이 죽음의 언저리를 맴돌면서

다짐한다.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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